Sustainable Designer Interview for W Korea Vol. 2
2020.04.04 FASHION
버려지는 것과 줍는 자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사는 것만이 패션의 본질적 가치인 시대는 지났다. 빈티지 더미에서 보물을 발견하고, 버려진 물건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젊고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의 청신한 제안. 지속 가능성의 가장 현실적 방법을 모색하는 세 명의 디자이너에게 각각 질문을 보냈고, 거창한 목표 대신, 꾸준한 노력을 통해 지구 보호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이들의 미래적이고 지혜로운 응답이돌아 왔다.
데드 스톡에 새 생명을
@chopovalowena
전화 인터뷰를 고집한 두 명의 런던 디자이너 엠마 초포바와 로라 로웨나가 조금 들뜬 목소리로 인사를 전했다. 그녀들의 브랜드 초포바 로웨나(Chopova Lowena)가 인터뷰 직전 참가한 2020 LVMH 프라이즈 세미 파이널 쇼룸에서 긍정적 반응을 얻은 시점이었다. 사장 재고 활용에 적극적이고, 환경에 깊은 책임을 느끼는 그들의 새로운 세계. 과잉 생산과 소비가 넘쳐흐르는 패션계를 이 두 여성이 구원할 수 있을까?
LVMH 프라이즈 쇼트리스트에 선정 된 것을 축하한다. 세미 파이널 쇼룸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나?
Emma Chopova 고맙다. 정말 기쁘고 값진 경험이었다.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평소 동경하던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여서 특히 의미가 컸다.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코멘트가 많았다. 사장 재고(더는 팔릴 수 없는)와 업사이클링 소재를 다루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 그것을 잘해내고 있는 점이 좋은 평가를 받은 듯하다.
업사이클링 디자인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E 기본적으로 우리 둘 다 빈티지를 좋아한다. 고가의 컬렉션을 만든다면 우리 스스로 그에 합당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CSM 석사 과정 중 처음으로 불가리아 전통 의상에 쓰인 패브릭을 활용해 스커트를 디자인했고, 그 후 계속 전통 의상 소재를 연구하며 판매 가능한 제품으로 개발하고 있다.
Laura Lowena 세상에 디자인과 옷이 넘쳐나기 때문에 브랜드를 시작할 거면 정말 특별한 옷을 만들고 싶었다. 의미와 스토리가 있는 옷 말이다.
E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에이프런은 결혼하는 신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불가리아 전통에 딸이 있는 집은 에이프런, 양말 등을 만들어 결혼식 하객에게 선물하는 전통이 있어서 모든 집에 서로 주고받은 에이프런이 트렁크를 가득 채울 만큼 많았다. 혼 례 문화가 바뀌고 서양 문화를 더 향유하는 요즘 그런 풍습도 사라졌지만, 우리는 전통 의상과 소품을 활용할 디자인을 생각했다. 빈티지 원단을 이용해 모던한 제품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꿈꾸던 일이다.
개인적으론 최근 본 업사이클링 브랜드 중 가장 독창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확실한 세계관이 보이고, 새로운 패브릭을 개발하기보다는 기존 재료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업사이클링 을 주장하지만, 공정이 많이 들어간 원단은 환경 오염을 연상시켜 오히려 나를 괴롭게 만든다). 당신의 소비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E 우리 옷의 소비자들은 정말 다양하다! 고객은 다양한 연령대와 사이즈의 여성이고, 우리의 드림 걸들이 옷을 입어주기도 한다. SNS를 통해 우리 옷을 입고 사진을 올려주는데 각자만의 스타일링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1년 반 전부터 판매를 시작했는데 영국과 아시아에 리테일러가 많은 편이다.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것이 너무 좋고, 지속 가능한 소재로 우리가 추구하는 미적 감성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도 소중한 부분이다. 진정성을 담고 아낄 만한 옷을 만들기 때문에 당신에게도 설득력을 가진 것 같다.
불가리아에 재료를 찾아주는 로컬팀이 있다고 해 서 매우 놀랐다. 그 팀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 재료를 모으는 데 혹은 공정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E (웃음) 로컬팀은 대부분 나라고 할 수 있다. 한 명의 직원과 우리 엄마가 도와준다. 우리의 소싱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DIY 방식을 통해 진행되는 데, 페이스북 그룹이나 옥션, 그 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서칭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관계를 쌓는다. 이제는 우리가 전통 의상 패브릭을 찾는다는 것이 많이 알려져서 직접 연락을 해오는 사람도 생겨 조금 수월하다. 불가리아 에서 하나의 공동체 업무가 되었달까. 그래도 소싱 자체는 힘든 일이다. 사장 재고를 쓰는 것 자체의 업무가 손이 많이 가고, 제일 힘든 부분은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소싱에서 생기는 이런저런 일이 제작 과정에 영향을 많이 끼친다. 하지만 그만 한 가치가 있다.
제작 과정은 어떤가? 재고 한계 때문에 디자인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다.
E 초반에는 전통 패브릭을 활용한 디자인이 스케 일링(품질 향상) 가능할지 몰랐다. 지금은 스케일링에 성공했고 현재는 시즌당 1,000개 정도의 스커트를 제작할 수 있다. 디자인에 따라 어떤 것은 일관성을 유지하기도, 어떤 것은 하나하나 다른 디자인도 있다. 이번 시즌은 이탈리아에 있는 제조사와 협업해서 전통 직물을 재현했다. 스커트 자체는 불가리아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지만 패브릭을 이렇게 직조함으로써 좀 더 일관적인 디자인 유지가 가능해졌다.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실천하는 일은 무엇인 가?
L 불가리아에서 사장 재고를 공수한다. 가공을 담당하는 모든 아틀리에가 소피아(불가리아의 수도)에 있고, 모두 5킬로미터 반경 안에 있다.
E 운송과 선박을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또 여행 횟수를 줄이고 필요 시 로컬 파트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식이다. 패키징이나 실처럼 모든 부분에 있어 지속 가능한 방법을 도입하려고 애쓴다.
앞으로 사업을 어떻게 유지해가고 싶나?
E 우리 브랜드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전통 기법을 유지하고, 특별한 제품과 실용적인 제품의 적절한 균형을 지켜가면서 비즈니스를 키우고 싶다. 진정한 가치가 있는 디자인 말이다.
L 다양한 공예품에 투자하고 디자인에 활용하고 싶다. 전통 수공예를 해온 장인들과 협업하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E 동유럽에 수공예 장인이 많다. 영국에도. 많은 시간과 자금이 필요하겠지만 연구해보고 싶은 부분이다. 협업을 통해 라이프스타일 제품이나 새로운 시각의 디자인을 제안하고 싶다. 패션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게 많을 것이다. 이런 차별화된 협업을 통해 우리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성장 해갈 것이다.
생활의 발견
@nicolemclaughlin
리복 클래식 디자이너 출신 니콜 맥로린(Nicole McLaughlin)은 빈티지 옷더미를 탐험하는 뉴요커다. 버려진 옷을 재조립하거나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일상적 물건을 재정렬해 독창적인 관점과 시각적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 작업의 특징. 그녀는 물자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디자인을 통해 선순환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고심한다.
당신의 창의적인 작업이 업사이클링 패션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이다. 더블유를 위해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Nicole McLaughlin 뉴욕에 살고 있는 디자이너 니콜 맥로린이다. 버려진 잡동사니를 업사이클 해서 의류 등으로 재활용하는 일을 한다.
작품에 유머 코드가 가득하다. 구상할 때 어떤 생각을 하나?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패션 업계는 굉장히 긴장감이 넘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소소한 재미를 찾고 사람들이 다소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모든 작업은 수작업으로 진행되나? 맞다. 우선 아이템 콘셉트를 잡으면 거기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러 나선다. 구제숍, 구제옷 거래 앱, 동네 슈퍼마켓까지 가리지 않는다. 재료의 다양한 부분을 내 몸에 대보며 어디에 가장 잘 맞는지도 살펴본다. 이 과정 에서 신발에 대한 아이디어가 반바지가 되거나 톱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 경우도 종종 있다.
환경주의자이자 모델 앰버 발레타는 지구를 구하는 5가지 방법 중 ‘모든 것은 순환되어야 한다’라고 순환의 중요성을 꼽았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미 지구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존재한다.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차고 넘쳐나서 방구석에 방치된 채 먼지만 쌓여가는 물건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전에 이미 만들어놓은 것의 재활용을 먼저 생각해보면 어떨까?
환경을 위해 개인적으로 실천하는 일은? 패션 업계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내 삶은 완전히 변했다. 일회용 플라스틱은 사용하지 않고 모두 재활용 가능한 제품으로 바꿨다. 내 옷장 전체도 빈티지 제품이다. 가장 좋은 점은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 있을 때다.
이렇게 만든 작업들은 어떻게 보관되나? 대부분의 작품을 프로젝트 완료 후 해체하여 다시 새로운 아이템으로 만든다. 몇몇 초기 작품과 실패 작은 스튜디오 선반에 디스플레이해두었다. 다른 작품은 갤러리에 판매하기도 했고, 촬영을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보낸 것도 있다.
요즘은 소비자들의 인식도 중요하다. Z세대에게 패션 소비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스스로에게 진짜 필요한 물건인지 물어봤으면 한다.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물건이 있는데도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찍어내고 있다. 요즘에는 윤리적으로 재료 소싱을 하거나 옷을 제작하는 브랜드가 많으니 다 함께 지속 가능한 브랜드를 지지 해주면 좋겠다!
팔로어가 30만 명에 육박한다. 그 영향력으로 하고 싶은 일은?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받은 지지를 결코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패션계에서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아티스트를 도울 수 있다면 멋질 것 같다.
앞으로 당신의 작업을 어떻게 발전 시키고 싶나? 내 아이디어는 점점 진화하고 있다. 작업에 쓰이는 재료의 범위도 넓어진다. 가구나 더 큰 스케일의 오브제 에도 흥미가 있다. 내 작업 방식은 패션 외 다른 업계에서도 많이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브랜드에도 창의적인 솔루션을 제안할 것이다.
은둔의 조각가
@synmurayama
에이셉 라키, 켄드릭 라마가 쓴 마스크로 유명하지만, 얼굴은 베일에 싸인 마스크 제작자이자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브랜드 TWONESS의 설립자 신 무라야마 (Shin Murayama)와 메일을 주고받았다. 해체주의적 작업으로 디지털 신의 풍경을 바꿔놓은 자신의 작업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겸손한 태도와 환경에 대한 자신만의 사려깊은 생각을 보내왔다.
한국에 팬이 많지만 에이셉 라키, 켄드릭 라마가 쓴 마스크 아티스트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분카 대학 졸업 후, 몇몇 패션 브랜드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들었다.
Shin Murayama 2009년 디자이너 일을 그만 두고 뉴욕으로 터전을 옮겼다. 2015년에는 아들이 태어났다. 미국으로 이주한 것과 아이가 태어난 것이 내 삶에 있어 가장 큰 변화였다. 10년 전만 해도 패션쇼 런웨이나 뮤직비디오에서조차 마스크를 보기 힘들었다.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인지 지하철에서도 마스크를 쓴 사람이 보인다.
커리어에 있어 리메이크 작업, 그리고 마스크의 시작은 무엇인 가? 미국 이주 후, 패션 브랜드를 만들 계획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실 과 바늘, 패브릭과 가죽 을 이용해서 무언가 만 드는 일은 계속하고 싶었다. 착용할 순 있지만 전형적인 패션 아이템이 아닌 것을 찾았고, 마스크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 아이템이었다. 리메이크를 시작한 이유는 그저 빈티지 옷이 가진 빛바랜 컬러와 닳은 텍스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스토리가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당신의 업사이클링 작업 방식이 친환경을 주장하는 요즘 패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 다. 지속 가능성과 패션, 어떻게 생각하나? 지구를 위하는 것, 지속 가능성. 이런 아이디어 앞에서 나는 겸허해진다. 앞으로 대량 생산과 소비 문화가 리드하는 시대는 곧 끝날 것이다. 2014년에 유행을 타지 않고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TWONESS’라는 의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국에서 시작한 데님, 트러커 재킷, 웨스턴 셔츠 등의 제품을 주로 재해석, 개조한다.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조차 과도한 생산에 기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지난 몇 년간 다른 여러 브랜드에서 빈티지 재료 사용이 늘어서 TWONESS는 좀 더 천천히, 적은 수량만 만들기로 결정했다.
환경을 위해 당신이 기울이는 노력이 있나? 차를 소유하지 않고 붉은 육류는 먹지 않는다. 가족 모두 플라스틱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다. 우리 부부는 작년 NYC Climate Strike에 아들과 함께 참여했고, 환경 이슈에 대해 논하곤 한다.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 패션계가 실천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적게 사고, 잘 고르고, 오래 입자(Buy Less, Choose Well, Make It Last)’라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여사의 슬로건을 따르면 좋겠다.
예정된 프로젝트가 있다면, 공개해줄 수 있나? 모 신발 브랜드와 협업한다. 아주 적은 양의 One–of–a–Kind 신발을 선보일 계획이다.
앞으로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나? 오랫동안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CREDIT
패션 에디터 이예지
뉴욕 통신원 윤수진
출처 W website